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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4u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12-07-14 15:47:36, Hit : 59)
예수님과 폭력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되 족하다 하시니라" (눅 22:38)

본문은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칼이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사라고 하신다(36절). 그런데 이 말씀은 마태복음 26:52에서 베드로가 칼을 사용했을 때 그것을 금하신 사실과 조화되지 않는다. 또 12명의 제자와 72명의 제자를 보내시면서 하신 가르치심과 반대가 된다(눅 9:1-3; 10:1-3). 역시 38절에 여기 칼이 둘이 있나이다 할 때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신 말씀도 문맥으로 보아 어려운 말씀이다.
  
먼저 최후 만찬석의 장면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그곳은 다락방이었다. 거기에 칼 두 자루가 있었다고 하였다. 도대체 누가 여기까지 칼을 차고 들어 왔을까? 그 칼은 누구의 것이었나? 일반적으로 갈릴리 사람들은 칼을 차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칼을 차고 다녔을 것으로 가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랜스키는 여기 칼 두 자루는 그 다락방 벽에 걸려 있던 다락방 주인의 칼이었다고 한다. 그 한 자루는 양의 목을 따는 칼이었고 다른 하나는 구운 고기를 짤라 식탁에 놓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제자 중에 가장 용감했던 베드로가 그 하나를 취했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이 취했을 것으로 보았다.1)
  
그러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칼을 사라는 말씀과 후에 칼을 썼을 때 금하신 사실은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겔던허이스(N. Ge;demhuys)는 아직도 제자들은 주님의 사역과 나라에 대해 영적으로 어두웠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아직도 예수님이 물리적인 힘으로 지상에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실 것을 기대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칼을 사라고 하셨을 때 그것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문자적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2)
  
이런 배경에서 어떤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오해를 교정하시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말씀하셨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이 칼을 사라고 하신 것은 임박한 위기에 대한 생생한 상징으로 하신 것이지 실제로 칼을 사용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 아니라고 한다.3)
  
만일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한다면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여야 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폭력을 써야 한다는 지극히 세속적인 교훈을 하신 셈이 된다. 교회 역사상 이 해석을 취하는 오점을 중세 로마 교회가 범했다. 교황교서(Unam Sanctam)에서 교황 보니페이스 8세(Boniface VIII, A.D. 1302)는 교황은 인류를 다스릴 영권과 속권을 다 시행할 권리를 가진다는 그의 주장을 이 본문 위에 확립하였다. 여기 두 칼은 영적인 칼과 세속적인 칼이라 하였다.4)
  
그러나 이런 해석은 전혀 예수님의 의도와 맞지 않는다. 닐(William Neil)은 본문에서 예수님이 폭력을 말씀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제시하였다.

1.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의 나라에는 민족주의가 없다(막 13장)
2.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군사력의 시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치유와 귀신을 쫓아내시
   는 것으로 보셨다.
3. 예수님은 그의 시험에서 속권의 영광에 대한 유혹을 거부하셨다(마 4:1-10)
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마 5:38-48)
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혁명적인 폭력을 가르치시지 않았다.5)

이제 본문에서 문제가 되는 남은 구절의 의미를 밝혀 보자.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만일 예수님이 당신의 원수들을 폭력으로 대항하려고 하셨다면 제자마다 다 칼을 사서 12개의 칼이 있다고 한들 부족했을 것이다. 그런데 둘로서 족하다고 하신 것은 그것이 칼에 대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족하다고 하신 것은 그 주제(칼, 무기)에 대한 그 이상의 대화를 막으시려는 대답이었다.6)  칼 두개로 족하다고 하신 것은 이런 성질(칼, 무력)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족하다는 말씀이었다.7)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다. 이 사랑의 복음은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으로서만 전할 수 있다. 중세 십자군 운동의 실패는 이 사실을 웅변적으로 증거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
   1. R.C.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Luke's Gospel. pp.1070-1071
   2. N. Geldenhuys, The Gospel of Luke, p.571
   3. Walter L. Leefeld, Luke(E.B.C. Vol. 8), p.1030
   4. N. Geldenhuys, op,cit.,
   5. W. Neil and S. Travis, More Difficult Sayings of Jesus, pp.114-115
   6. W. Hendriksen, The Gospel of Luke, p.977
   7. Leon Morris, Luke.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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