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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4u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12-07-14 15:49:07, Hit : 63)
큰 구렁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눅 16:26)
                                          
이 말씀은 지옥의 고통 중에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시켜 그의 손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 자기 혀를 시원하게 해 줄 것을 부탁했던 부자에게 준 응답이다. 부자는 세상에서 살 때 그의 많은 재물에도 불구하고 자기집 대문 밖에 있었던 거지 나사로를 도와 주지 않았다. 그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지 않았고 그 결과 죽은 후에 당혹함과 고통을 느낀다. 만일 그가 살았을 때 가난한 나사로를 도와주었더라면 나사로가 지옥에서 고생하고 있는 부자를 보고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인가 그를 위해 변호나 간청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나사로가 있는 곳과 부자가 있는 곳 사이에는 큰 구렁이 끼여 있어 서로 건너가고 올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설사 부자가 나사로를 도와주었다고 한들 그가 부자를 도와 줄 수는 없었을 것이 아닌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학자들은 여기 지옥은 하데스로서 지옥의 고통이 있는 곳이 아닌 그저 죽은 자가 가는 지하 세계로 보기도 한다. 그러면 부자의 고통은 무엇인가?  지옥의 고통이 아니었다면 어떤 고통이었는가? 그 고통은 그의 과거의 생활에 대한 후회 때문에 느낀 자책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여기 큰 구렁은 사실상 실제가 아니라 부자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하데스를 말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여기 큰 구렁은 무엇을 말하는가?  핸드릭슨(W. Hendriksen)은 이것은 사후 사람의 운명의 불개변성에 대한 사실적이고 잊을 수 없는 상징적 표현이라고 보았다.1)  겔덴허이스(N. Geldenhuys)도 지상의 생애는 사후 운명이 결정되는 선택의 순간이라 하였다. 사후 은혜의 시간이 다한 다음에 그들의 운명은 최종적으로 영원히 인쳐진 것이다. 영원히 멸망한 자와 구원받은 자 사이에는 소통의 가능성이 없으며2) 죽음으로 그려진 그 선을 넘은 후에는 아무도 그의 영적 상태나 거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3)
  
이상의 견해들은 한결같이 구렁을 지리적인 장소를 보지 않고 하나의 비유로 보았다. 그리고 사후에 운명은 절대로 변할 수 없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 아브라함의 답변을 듣고 난 부자는 자기의 다섯 형제가 세상에 살고 있는데 그 나사로를 보내 증거해서 자기처럼 지옥에 와 고생하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대답도 부정적이었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가 있다고 하였다. 거기서 모세와 선지자는 성경을 말씀한다. 성경은 가난한 자를 도와주라, 구제하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부자 자신도 그 성경으로는 설득되지 못하고 지옥에 와 있다. 그래서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서 그들에게 나타나 전도하면 달라질 것이라 한다.  아마도 자기 형제들이 회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세와 선지자가 못했다면 나사로가 살아서 다시 세상에 가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사실이다. 요한복음 12:10-11에 보면 유대인들이 나사로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만에 무덤에서 예수님이 살려 낸 자였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보고 놀라면서도 여전히 예수를 믿지 않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살아난 나사로를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도 심지어 제자들까지 믿지 못하지 않았는가?4)  이것이 사실일진대 기적을 보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신자들의 기적의 요청은 그들의 불신에 대한 하나의 구실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대답은 부자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 그는 구제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색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 그 자신을 위해 좋은 것을 택했다. 그는 그가 원하는 것을 택했고 이제 그의 선택에 의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행한 대로의 공의의 실현이다.5)
  
우리 신앙생활은 시공에 제한을 받는다. 우리의 생이 큰 구렁의 선이 그어진 곳까지 이르면 거기서 중단된다. 그 후에는 다시 예수를 믿고 죄를 회개할 기회나 선행의 기회 그리고 주님의 일을 할 기회가 없다. 그리고 그 때의 신앙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데 그것은 아무도 바꿀 수가 없다. 그러니 오늘을 성실하게 믿음으로 살자, 기적과 기사를 보고 믿으려는 옅은 신앙을 갖지 말자!  우리의 신앙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기적이 아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였다(요 20:29).

   주
    1. W. Hendriksen, The Gospel of Luke, p.786
    2. N. Geldenhuys, Commentary on the Luke, p.427
    3. Charles L. Leifeld, Luke(B.B.C. Vol. 6), p.568
    4. F.F. Bruce, The Hard Sayings of Jesus. p.191
    5. Leon Morris, Luke,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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