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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4u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12-07-14 15:50:22, Hit : 59)
잃은 양 비유의 청중

                  누가복음 15:1-7;  마태복음 18:12-14

세 복음서는 종종 같은 사건을 기록하면서도 청중이 다를 때가 있다. 위의 본문이 바로 그 중에 하나다.
누가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행동을 비난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이 비유는 예수님의 행동에 대한 변호의 성격을 띤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왜 사회에서 버림받은 계층의 사람들을 구원하는 나의 사역에 못마땅해 하느냐? 왜 너희는 잃은 양, 잃어버린 동전, 그리고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 것을 기뻐하지 않느냐고 강경하게 질문하신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그들의 행위가 후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돌아 온 탕자 동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의 행위가 못마땅하게 생각되었던 형의 태도와도 같다고 하셨다.
  
누가복음 15:3-7과 마태복음 18:12-14 은 같은 비유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마태의 경우는 누가와 다르게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있다(18:1). 이 청중들의 차이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이 비유가 두 개의 다른 청중들에게 하신 별개의 비유라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그 이론은 아래와 같은 문제에 해답을 주지 못한다.

1. 이런 주장은 두 복음서 사이에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낳는다. 누가는 마태의 자료
   를 사용했다는 것이 초대교회의 공통 견해였다. 여기서 두 비유의 기록이 한 자료에서 나온 것을 부인
   할 수 없지 않은가?
2. 본문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똑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하나 청중은 이 복음서와 저 복음서 간에 다르다.
      막 9:50 (청중: 제자들)             눅 14:34 (군중들)
      마 6:22-23 (주로 제자들)         눅 11:34-36 (군중들)
      마 7:13-14 (군중들)                눅 13:24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에 마을과 도시의 백성들)
  
위의 경우에 같은 말씀을 두 다른 청중에게 말씀하셨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때에는 복음서 저자의 목적이 무엇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저자들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다고 할 때,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할 때만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그것들을 해석할 때에도 해당된다. 성령께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만 하실 뿐 아니라 그들로 가르치게도 하셨다(요 14:25-26). 이 가르침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신 것만 아니라, 새로운 청중들에게 이런 교훈을 적용하게도 하셨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복음서 저자들은 그 말씀을 다른 청중들에게 적용할 수가 있었다. 마태의 제자들을 향하신 말씀이나 누가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은 사실상 만인에게 다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복음서 저자들은 그들의 상황에 따라 새로운 청중들에게 그 말씀들을 적용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비유는 잃은 자(죄인들)를 무시하는 바리새인들에게나, 그들을 사랑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신자들에게 다 필요하였다.1)
  
이렇게 볼 때 누가복음에서 이 비유는 구원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 관한 그의 복음적 관심을 반대하는 예수님의 반대자들을 겨냥 한데 비해 여기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목회적 돌봄이 그의 醍� 소자들에게까지 확대되어야 함을 그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2)
  
그러면 우리는 이 비유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이 비유는 전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일 뿐 아니라 사랑 받는 장들 중에 하나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본다. 그 계획은 우리가 보기에도 무가치하고 소망이 없어 보이는, 그래서 쉽게 포기해 버리기 쉬운 그런 사람들까지도 포함되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는 우리가 소망없이 보는 그런 죄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구원을 인해서 늘 감사, 감격하며 땅 끝까지 소자와 소외된 죄인들을 찾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며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의 비유나 누가복음의 비유는 같은 장소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록한 것이지 별개의 시간과 장소와 청중에게 하신 것이 아니다.

   주
   1. Robert H. Stein, Difficult Passages in the Gospel, pp.47-50
   2. R.T. France, Matthew,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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