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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4u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12-07-14 15:48:12, Hit : 68)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눅 18:14)

본문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비유를 예로 들어 기도자의 바른 자세를 가르치신 말씀이다. 기도는 앞서 기르치신 대로 낙심하지 앓고 계속하기만 하면 응답되는 것이 아니다. 기도자의 자세가 올바라야 한다.
  
여기 두 사람은 성전에 올라갔으나(10절) 성전 안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기도하는 성전의 한 뜰에 들어간 것이다. 그곳은 아마도 이방인의 뜰이 아닌 여인의 뜰이었을 것이다. 여기 두 사람은 당시에 대조적인 계층의 사람이었다. 바리새인은 경건한 성도의 대표였고 세리는 세속적이고 탐욕스런 사람들의 대표였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의 가정적인 선입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신 사실에 영향을 받아 저들은 언제나 나쁘다는 편견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사실 이런 생각은 잘못이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면 그들은 바리새인이었다. 또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있었다면 역시 바리새인이었다.
  
이런 형편에서 바리새인의 입에서는 본문의 기도가 튀어 나올 수 있었다. 그의 기도는 자기의 종교 생활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 기도는 감사로 일관되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다른 사람들에게서 구별되게 지켜 주신 것을 감사하였다. 그는 율법이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 그는 일년에 한 번이 아니라 한 주에 두 번씩이나 금식하였다. 그는 모든 수입의 십일조를 드렸다. 이 바리새인의 기도에는 잘못이 없다고 보여진다. 이에 비해 세리의 기도는 전혀 달랐다. 그는 저 멀리 이방인의 뜰 쪽에서 머리도 들지 못한 채 눈도 못 뜨고 가슴을 치며 다만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였다. 그는 자기의 죄를 깊이 느꼈다. 그에게는 자신의 무가치함뿐 장점이나 자랑할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자비만을 구하였다.
  
그 결과는 다른 두 기도에 대한 두 가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의로운 바리새인의 기도는 응답이 없었고 죄인 세리의 기도는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이 두 사람의 기도 응답에 이런 차이를 가져왔는가? 바리새인의 기도의 잘못은 무엇이었나?
  
세리의 기도는 시편 51:17을 연상하게 한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결국 이 말씀은 죄의식이 없이는 용서도 없다는 진리를 웅변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바리새인의 문제는 자의요 이기적인 자애였다.¹
  
그의 기도는 사실상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었다. 이어서 예수님은 두 사람의 신앙의 자세를 지적해 주셨다. 두 사람의 기도의 차이는 그 두 사람의 기도의 자세의 차이였다. 그래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다(14절).
  
하나님은 가득 찬 그릇에는 은혜를 쏟아 부으실 수 없으시다. 자신을 비우는 자, 겸손히 자신의 부족을 채워 주시기를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를 주시며 채워 주신다²
  
여기서 기도는 그 자세가 중요함을 배운다. 기도자는 무엇보다도 겸손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구할 바를 배운다. 죄 용서가 모든 기도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배고픈 자가 배부름을 얻는다는 진리를 배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사모함이 기도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겸손히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회개하는 죄인이 은혜를 발견하게 된다.³

   주
   1. Charles L. Childers, Luke, B.B.C. Vol.6, p.578
   2. R.C.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Luke's Gospel, p.906
   3. Leon Morris, Luke,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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