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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4u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12-07-14 15:51:13, Hit : 61)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 12:50)

우리가 이 구절을 바로 이해하려면 예수님의 전체 교훈과 사역을 가르친 말씀들을 참고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완전한 능력이 주어지기까지는 무엇인가 중요한 사건이 발생해야 한다는 느낌을 가진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인가? 본문을 바로 해석하면 그 해답은 자연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먼저 예수님이 받으실 세례부터 생각해 보자. 여기서 세례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리는 세례란 말을 앞에 나오는 구절의 불과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불과 물은 그 성질상 정반대이지만 실제에서는 상이한 것이 아니다.1) 여기서 렌스키는 불은 십자가의 공격의 불로 보고 세례는 역시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보았다. 그런데 세례에 대해 좀더 원만한 이해를 위해서는 예수님 자신의 세례와 세례에 대한 그의 말씀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 세례 요한에게 가셨을 때 요한은 난색을 표시했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십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셨고 세례 요한은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세례 후에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였다(마 3:13-17). 이 세례 후에 예수님은 곧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여기서 세례는 물 세례였지만 그가 세상에 오셔서 이루실 대업 즉 속죄를 위한 사역의 무엇을 암시하게 한다.  
또 하나의 사건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마지막 여행 때 세베대의 두 아들이 주의 영광 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을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막 10:38). 거기서 잔과 세례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에 동참하는 것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여기서 예수님의 받으실 세례가 무엇인지는 밝혀진 셈이다. 예수님의 생애는 처음부터 고난의 생이요 그 절정은 십자가의 죽으심이다. 그것은 세례로 비유될 만하였다. 세례 때 물 속에 몸을 잠그면 그 물이 온 몸을 다 뒤덮고 억누르듯이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이 예수님을 괴롭게 억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겔던허이스(N. Geldenhuys)도 구세주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시면서 성육신에 의해 역시 참으로 사람이시다. 그러므로 그의 다가 올 고난과 희생적 죽으심에 대한 생각은 그를 고뇌 ─ 비록 그가 그것을 기꺼이 견디셨지만 ─ 로 채웠으며 그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무서운 고난을 온전하게 의식하셨다`고 하였다.2)
  
그러면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으로 임한다(막 9:1). 그러니 세례에서 시작된 메시아 사역은 십자가 앞에까지 와서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으로 성령이 임하셔서 전에 비교할 수 없었던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 그래서 그 제한이 무너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받으실 세례 즉 십자가와 죽음을 통해서 성령의 강림하심으로 될 일이었다. 그것은 고난이었다. 주님은 고난이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아셨다. 그것은 그의 오심의 목적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비록 그가 그 고난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 들이셨을지라도 아무것도 고난을 매력적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3)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것을 바라고 기다리셨으므로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고 괴로워 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은 그를 배반할 유다의 마음, 그를 정죄할 빌라도의 마음 혹은 그를 고소하고 정죄하며 십자가에 못박을 악한 유대인의 마음에 영향을 주려고 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에 의한 세계 구속에서 그의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이런 사건(수난과 십자가)들을 바라셨다. 이는 마치 임산부가 세상에 아기가 날 기쁨 때문에 산고의 아픔을 기쁨으로 참고 기다리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4)  예수님은 당신이 지실 고난의 십자가로 괴로우셨지만 그 십자가로 인해 죄인인 우리들이 용서와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을 내다보시고 기뻐하셨다. 그래서 능동적으로 자원해서 그 고난의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다.

   주
   1. R.C.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Luke's Gospel, p.714
   2. N. Geldenhuys, Commentary on the Gospel of Luke, p.366
   3. Leon Morris, Luke. p.242
   4.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Vol. 3.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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