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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4u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12-07-14 15:50:56, Hit : 112)
예수님과 헤롯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3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눅 13:32)

여기 헤롯은 대 헤롯의 아들로 B. C 4년에서 A.D. 39년까지 분봉 왕으로 갈릴리와 요단강 동편의 베뢰아 지방을 다스렸다. 그는 세례 요한을 참수형 시킨 장본인(막 6:17, 29)으로 누구도 그의 가정문제(부도덕성)에 대해 간섭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물론 헤롯은 동생 빌립의 아내를 취한 문제로 세례 요한의 책망을 받고 그것이 못마땅하였으나 귀담아 들었으며 그를 존경까지 하였다. 실제로 세례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게 한 사람은 헤롯과 재혼한 헤로디아였다. 그런데 어떤 바리새인들이 와서 바로 그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 하니 여기를 떠나라는 것이었다(31절). 본문은 이 바리새인들의 친절한(?) 경고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말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는 세례 요한을 어쩔 수 없이 죽이고 나서 양심에 크게 가책을 받고 있었다(마 14:8). 그렇다면 그가 다시 예수님을 죽이려고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야심가였던 헤롯은 자기 영토 안에서 예수 운동이 확산되어 정치적으로 어떤 문제라도 야기될 것에 염려한 나머지 계획에도 없는 위협적인 소식을 전하게 해서 예수님을 그의 관할 지역에서 떠나게 하려는 시도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학자는 바리새인들이 헤롯을 핑계하여 거짓말로 예수님을 갈릴리 지방에서 유다 지방으로 떠나시게 하므로 그들(바리새인)의 세력이 큰 데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계획이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1)  그러나 본문에서 예수님이 이 소식을 듣고 하신 반응으로 보아 바리새인들은 거짓말을 한 것 같지는 않다. 또 바리새인 중에는 예수님께 호감을 가진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들도 있지 않았는가?
  
예수님은 저들에게 헤롯 왕에게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라고 하여 헤롯 왕을 여우로 부르셨다.  여기서 여우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여우는 교활하고, 겁약하나 여기 헤롯은 대담하고 용기가 있었다. 그는 여우이기보다 차라리 사자였다. 그래서 스펜스는 여기 여우의 성이 헬라어로 여성이여서 영어로 암여우(she-fox)라고 문자적으로 해석을 하고 헤롯은 헤롯의 아내 헤로디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 헤로디아는 왕좌 뒤에서 왕처럼 실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지나친 상상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헤롯을 여우라고 한 것은 자기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활한 수단을 쓸 뿐 아니라 왕으로서 자격이 없는 제2급 지배자란 의미였다.2)  또 이 말은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나 비열한 자를 가리키며 파괴를 상징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님이 헤롯을 저 여우라고 하신 것은 그가 위인도 아니요 정직한 사람도 아니며 엄위나 존귀도 없음을 가리키신 것이다.3)
  
다음으로 이 구절에 문제가 되는 것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이 한 지역의 왕에게 여우라는 말을 하실 수 있을까?  원수도 사랑하라는 것이 그의 교훈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은 교활함으로 정치적 생명을 유지해 가는 불의한 지배자에게 하나님의 노하심으로 정죄하실 수 있었다. 실제로 나단 선지자의 경우는 다윗 왕을 책망함으로 사랑하였다(삼하 12장).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경우 원수의 행위의 잘못이나 사악함을 지적해 주는 것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헤롯에게 내가 오늘과 내일은 일을 하다가 제3일에 완전하여지리라고 하셨다. 여기서 오늘과 내일은 문자적으로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제3일에 한 말씀은 정말 3일 후에는 당신의 기적을 베푸시는 자비의 사역을 중단하신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는 그의 남은 시간이 짧다는 것뿐이다.4)  제3일에는 그의 부활에 대한 예언으로 본다. 또 완전하여진다는 말씀은 내가 내 목표에 도달한다, 완전하여진다는 뜻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가리켰다. 그것은 히브리서 2:9에 "고난을 통하여 완전해지리라"고 하셨고, 33절에는 그의 사랑의 완성을 가리켰으며, 또 70인역(LXX)의 출애굽기 29장과 레위기 8장에 사용된 완전하다는 헬라 말은 제사장적 사역의 헌신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5)
  
이 본문은 우리에게 사랑은 공의를 배제하지 않으며 각자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함을 가르친다. 하나님의 계획은 절대적인 주권자의 것으로 인간 왕도 그것을 방해하거나 저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주
   1. W. Hendriksen, The Gospel of Luke, p.709
   2. Neil and Travis, More Difficult Sayings of Jesus, p.106
   3. Leon Morris, Luke, p.249
   4. R.C.H. Lenski, Luke, p.757
   5. Walter L. Liefeld, Luke(E.B.C. Vol. 8), p.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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