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된 회원 및 총회원 목록보기

현재 0분께서 회원으로 접속해 있습니다. 0 회원로그인
34  1/3
  View Articles
Love4u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12-07-14 15:56:36, Hit : 86)
왜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눅 4:24; 마 13:57; 요 4:44)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전도 중(4:14-9:50)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받으셨을 때 하신 말씀이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의 독특한 교훈과 이적기사에 대한 소문으로 이미 그의 인기를 잘 알고 있던 터라 그가 고향에 오시는 것을 크게 환영하고 있었다. 과연 예수님은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해석하시는 데서 보통 랍비와는 전혀 다르셨다. 예수님은 내적 확신과 신선함 그리고 권위와 인자하심으로 말씀하셨다. 저들은 그의 지혜에 감명을 받았고 그가 행하신 능력으로 인해서 감동되었다(마 13:54; 막 6:2).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반응은 곧 돌변해서 부정적이 되고 말았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야고보와 요셉,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느냐?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예수님은 선지자가 자기 고향 밖에서는 존경받지 않음이 없다고 하셨다(마 13:57; 막 6:4; 요 4:44).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한참 제6공화국의 대통령 선거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조국을 생각해 본다. 야당인 민주당이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거듭 약속했으나 총재와 고문 두 사람이 서로 양보하지 않고 출마 의사를 굳히자 그 후보들의 고향에서 서로 자기 고향 사람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누가 더 백성에게 인기가 있느냐?  더 많은 지지를 받느냐? 당선 가능성이 크냐로 경합이 되고 말았는데 그 후원자는 고향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 정반대의 대접을 받고 있다.  저들은 아예 예수님을 동네의 산 낭떠러지에서 밀쳐 뜨려 죽이려 하였다(29절). 그 이유가 무엇인가?  왜 내 고향에서 위대한 인물이 나왔는데 그에게 환대는커녕 배척을 했는가?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시기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함께 자라고 배우고 생활했던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사람 안에서보다는 낮선 사람들 속에서 위대함을 보려는 채비가 되어있다.1)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원인은 그들의 장차 올 세계 천국에 대한 편견, 유대인된 자부심, 메시아에 대한 오해, 그리고 이방인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세상은 예수님의 나라가 아니다. 세상에서는 선지자로서도 존경을 받으실 곳이 없으셨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유대나 갈릴리에서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까지 배척을 당하셨다.2)
  
예수님이 택하신 성경 본문은 사실상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달갑지 않은 말씀이었다. 더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는 유대인을 제쳐놓고 이방 사람들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고 설명하시므로 저들의 자부심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리셨던 것이다. 3년 6개월의 혹심한 흉년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기적적으로 한 과부를 먹여 살렸는데 그녀는 이스라엘의 과부 중 하나가 아닌, 사렙다의 과부였다. 또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많은 문둥이 중에 그 어느 누구에게가 아니라 수리아 사람 나만에게 보냄을 받았다고 하셨다.
  
이런 해석은 사실 역사적인 사건이어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요, 진리이지만,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요, 이방인은 구원에서 제외된다는 저들의 편견과 경건치 않은 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은 마치도 사람이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과도 같다고 본 저들의 이방인 천시의 사상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저들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대신 배척하였다.
  
그러면 이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본문은 오늘의 교회와 신자들에게 네 지경을 넓히라고 요구한다. 오늘의 교회와 성도는 자기들만의 작은 세계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신자된 특권만 생각하고 먼저 구원받은 자의 책임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복음이 당시에 소외된 자들을 위한 것이라 지적하셨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도 그 당시처럼 불신자의 구원에 관심이 있으시다. 그러니 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부합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신앙인은 당시 유대인처럼 예수님을 이용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 자기의 편에 맞춘 것이어서도 안 된다. 참 신앙은 온전히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주
   1. Leon Morris, Luke, p.118
   2. Leon Morris,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p.286


Prev
   가난한 자와 복음

Love4u
Next
   묵은 것과 새 것

Love4u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o!JiN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