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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4u  [homepage]님께서 남기신 글 (2012-07-14 15:53:20, Hit : 85)
마르다와 마리아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눅 10:42)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신 수난주간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를 방문하셨다. 예수님의 방문을 받은 마르다는 분주하게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하느라 땀을 흘리며 애를 쓰고 있는데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앉아 말씀만 듣고 있었다. 마르다는 참다못해 예수님께 마리아가 그녀를 도와주도록 부탁하였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이 요구에 뜻밖의 대답을 하셨다. 일하는 마르다보다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대접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점,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했다고 하셨으나 무엇이 좋다는 설명이 없는 점, 그리고 본문에 대한 상이한 사본 문제 때문에 어려운 말씀 중에 하나이다.
  
이 본문에서 우리가 부딪치는 첫 번째 문제는 본문의 해석 이전에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불공평한 대우를 하시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이번 방문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에서나 예루살렘에서 들려오는 소문, 그리고 유대 지도자들의 심상치 않은 동태에서 충분히 그랬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이었다면 예수님은 각별하게 당신을 대접하기 위해 분주하고 바쁜 그녀를 제지시킬 일이 아니라 칭찬하셨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1. 마르다는 이 경우에 미리 음식을 장만해 놓았어야 했을 것이다.
   2. 예수님이 마르다의 집에 정말 고귀하신 손님으로 오셨다면 적어도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예수님 곁에
      서 그를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3. 10:40에 나 혼자 일하게 둔다는 말씀을 두고 생각하면 앞서 마리아도 마르다와 함께 음식 장만을 위해
      일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왜 마리아의 선택이 더 좋은 것인가? 풍유적으로 해석한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마르다는 율법에 대한 유대인의 열심이었고 마리아는 바울의 신앙이었다. 마르다는 로마 가톨릭이요, 마리아는 복음적 루터교다. 마르다는 활동적이요, 마리아는 사색적이다. 마르다는 활동적 성격이요 마리아는 깊고 조용하고 고요한 성격이다. 이런 해석은 사실상 그 원인을 성격상의 차이라고 보기 때문에 더 좋은 편을 택했다는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이 될 수 없다.
  
렌스키는 여기서 좋은 편을 택했다는 말의 초점을 말씀에 맞추었다. 택했다는 동사 안에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관심과 신앙, 경청과 일관된 주의 그리고 간절한 충용이 포함되어 있었다.1)  이것이 식사 대접보다 예수님을 더 기쁘시게 하였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 무더운 지방에서 종일 걸어서 여행하시며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그러니 예수님께 필요한 것은 여러 가지 고급 음식이 아니라 조용하게 쉬시면서 예루살렘에서 있을 당신의 일들을 함께 나누시는 일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을 버려 둔 채 많은 음식 준비에 바쁜 마르다보다는 마리아가 더 예수님의 마음을 잘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이 좋은 편을 택했다고 하신 이유였을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더 좋은 편을 예배나 명상의 생활이 봉사보다 더 나은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다.2)  맨손(Manson)은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또 어떤 이들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배우고 순종하라고 가르치셨는데 마리아는 그 편을 택했다고 한다.3) 위의 해석과도 비슷한 해석으로 마르다는 많은 것 즉 물질적인 것, 육체적인 것 그리고 사회적인 것을 택한 데 비해 마리아의 한 가지는 영적인 것, 영원한 것이었다.4) 그것은 마리아의 예수님을 신뢰하는 자세로서 올바른 영적 자세였다.5)
  
마지막으로 사본상 차이점에서 오는 해석상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사본상 차이는 대체로 아래 세 가지 즉 (1) 필요한 것 몇 가지 (2) 필요한 것 한 가지 (3) 필요한 것 몇 가지나 한 가지만으로 되어 있는데6) 최근 번역판인 새국제역(NIV)에서는 두 번째 것을 선택하였다. 우리말 성경은 둘 다 포함되는 마지막 세 번째 것을 택한 것 같으며 이런 점에서 그 해석은 사본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1. 여기서 예수님은 말씀을 배우는 것만 중요하고 행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마르
      다에게 몇 가지나 한 가지만의 음식장만도 필요하다고 하셨다. 다만 신자가 먼저 힘쓸 것은 말씀을 배
      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먼저 영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 봉사도 말씀
      을 배우고 경청하는 일이 우선이어야 한다.
   2.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자는 봉사의 생활도 필요한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일
      에서나 세상의 일에서 본이 되어야 한다. 중세에 베네딕트파 수도원의 모토는 수도자들을 위한 것이었
      음에도 일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둘은 신자의 생활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3. 신앙생활은 언제나 우선순위가 전도되어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
   1. R.C.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Luke's Gospel. p.617
   2. Manson, Sayings of Jesus. pp.64-65
   3. Walter L. Liefeld, Luke(E.B.C. Vol.8), p.945
   4. Charles L. Childers, Luke(B.B.C. Vol.6), p.507
   5. Leon Morris, Luke, p.210
   6. Joseph A. Fitzmyer, Luke X-XXIV(New York: Doubleday, 1983), p.894
     (1)에 해당되는 사본 한 사본(38)  (2) 사본 P.45, P75, A. C. K. P. 등) (3) 사본 P.3  B. C², L,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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